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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est/Life

누구의 말일까요?

by 강릉바다의 블로그 2022. 10. 10.

1.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랐다.

 

2. 머리가 나쁘다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3.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았다.

 

4. 윗 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5. 몸이 약하다고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 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받았다.

 

​6.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7.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세 번 싸워 스물세 번 이겼다.

 

8. 윗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마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 했다.

 

9.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10.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마라.

나는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11.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1.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랐다.

이순신 장군은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8품 봉사직에 있다 조광조 무리로 몰려 파직되었고, 아버지는 과거를 보지 않아 가세가 심하게 기울었습니다. 외갓집에서 자란 이순신 장군은 풍족하게 크지 못했는데요.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탓하지 않고 무과에 도전했던 이순신 장군의 강인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말입니다.

2. 머리가 나쁘다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환경 탓에 이순신과 그의 형제들은 공부에 매진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순신 스스로도 공부에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문관의 길과는 점점 멀어졌는데요. 그러던 중 무인 방진의 딸과 결혼한 이순신은 문과에서 무과로 전향하여 32세에게 겨우 무과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훗날 서른둘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머리가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는 명언을 남기게 됩니다.

3.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았다.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였지만, 이순신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9품 함경도 권관이라는 최하 말직으로 공직을 시작하게 된 것인데요. 그는 무려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며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4. 윗 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이순신은 빠르게 승진하는 길보다는 자신이 생각한 정당한 길을 걸었습니다. 상사의 정당하지 못한 지시, 명령, 압력에 따르지 않았는데요. 때문에 파면, 두 번의 백의종군, 옥살이 등의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5. 몸이 약하다고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 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받았다.

흔히 이순신 장군하면 일반 성인 남성보다 기골이 장대하고 튼튼한 모습이 떠오르죠. 하지만 실제로 그는 체질이 건강하지 않아 위장병과 전염병에 자주 걸렸으며, 사천해전에서 화살을 맞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평생 고통스러워했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 같은 자신의 체질에 대해 스스로 자신의 고질병을 언급하며 몸이 약하다고 고민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참고로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이순신은 말과 웃음이 적었다. 용모는 단아해서 마음을 닦고 몸가짐을 삼가는 전형적인 선비와 같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6.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두 번의 백의종군과 옥살이, 파면 등을 겪어야 했던 이순신 장군! 실제로 매우 늦은 나이인 47살, 그것도 전쟁 중에 해군 함대의 사령관 자리인 제독에 올랐는데요. 그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두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실제로 평탄치 않은 관직 생활을 했던 이순신 장군이기에 이런 말을 남길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7.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세 번 싸워 스물세 번 이겼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활동할 당시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고 합니다. 조정의 지원이 전혀 없던 상황 속에서 그는 스스로 농사를 지어 전략과 전술에 필요한 군자금을 확보하고, 물자를 보충 공급하는 것도 직접 지휘하였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노력의 결과 이순신은 23전 23승이라는 불패의 신화를 기록하며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8. 윗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마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앞서 이순신 장군은 두 번의 백의종군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백의종군은 조선시대 중죄를 지은 무관에게 일체의 관직과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 참전하게 하는 처벌을 말합니다.

1차 백의종군은 1588년 함경도 북병사에서 이일이 지휘한 여진족 토벌전이었던 ‘시전부락 전투’ 당시의 패배를 이유로 백의종군 형에 처해지게 됐습니다. 당시 이순신은 녹둔도의 병력이 적은 것을 염려해 이일에게 군사 증원을 요청했지만 이를 들어주지 않았고, 얼마 후 여진족이 녹둔도를 공격해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일은 자신의 잘못이 밝혀질까 두려워 조정에 거짓장계를 올렸고 이로 인해 이순신이 1차 백의종군에 나서게 됩니다.

2차 백의종군은 수군을 이끌고 나가 가등청정의 함대를 요격하라는 선조의 명령이 함정인 줄 알았던 이순신이 출전을 미루자, 선조는 이순신이 왕명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그를 체포했는데요. 원균의 모함까지 이어져 조정은 이순신에게서 삼도수군통제사 직책을 박탈하고, 2차 백의종군을 명했습니다. 매우 억울할만한 상황이었지만 이순신 장군은 오히려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갖지 말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하죠.

9.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억울한 누명으로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를 박탈당한 이순신의 자리는 원균이 대신하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의 자리를 넘겨받은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전투를 치르지도 못하고 몰살당하는 조선수군 최대의 피해를 야기하는데요. 칠천량 해전의 패배로 조선 수군이 보유하고 있던 판옥선과 거북선이 대부분 파괴되지요.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에게 남은 것은 배설 장군이 이끌고 나온 12척의 배 뿐...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이에 굴하지 않고 총 13척의 판옥선(배설 장군이 이끌고 나온 12척 + 이순신 장군이 재부임한 후 건조한 마지막 1척의 배)으로 133척에 달하는 왜선을 막아내며 역사에 기록될 명량해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0.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마라.

나는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이순신은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강직한 아버지로도 유명하죠. 그의 셋째 아들인 이면은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에 대한 보복으로 아산현에 습격한 일본군에 항쟁하다 전사를 하는 아픔을 겪었고요. 이순신의 장남인 이회는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 해전 등에 직접 참전하며 아버지와 함께 전장에 나가 싸웠습니다.

11.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나의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마라.” 한국인이라면 이 말이 이순신 장군이 남긴 유명 명언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실 텐데요. 이순신 장군은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죽음보다 전투에서의 승리를 중요시할 정도로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충정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전장에 나가기 전에도 “필사즉생 필생즉사”라며 필승을 다지기도 했죠.

https://blog.naver.com/osan_si/222320512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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